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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 큰 손실을 봤다. 손실이 커지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다니기 바빴다. 손실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각종 투자 관련 카페나 커뮤니티에서 이름 있는 사람들, 일명 '네임드'라 불리는 사람들의 글도 구독하고, 유명하다는 유튜버들의 영상도 열심히 보았다. 나름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실제 매매를 할 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제 갓 입문한 주린이에게 그런 다양한 정보는 실전 매매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혼란을 더 초래했던 것 같다.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오니 선택지가 차고 넘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고, 그때그때 내가 취한 입장에 따라 확증편향에 힘을 실어주는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매매를 하다 보니 이익보다는 손실이 더 커졌다. 이러다보니 망연자실 왜 투자를 하겠다고 들어와서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 속에 잠 못 이루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고 나면 또다시 굶주리고 괴로운 하이에나가 먹이를 찾으러 배회하는 것처럼 퀭한 눈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보지만 결과는 늘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던가.. 가엾은 주린이는 평소에 독서를 좋아했기에 서점에 가서 책을보다가 투자와 관련된 한 가지 이론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와 관련한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이전에 손에 쥐고 있었던 수많은 달콤한 정보들을 놓아버리기로 결정을 했다. 한 가지 이론에 깊이 빠져있다 보니 이를 증명해 줄 또 다른 대치되는 이론들을 찾아보기로 결심을 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깊이 있는 통찰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여전히 자잘한 손실은 입고 있으나 무모한 실수를 하거나 허황된 베팅을 하는 일은 없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실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고 스스로의 힘으로 매매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남이 사냥해 놓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일은 없어졌다.
진정한 인생의 길을 찾고 싶다면 '전념' 해야 한다. 투자를 처음 시작하던 내가 그랬듯이 한가지에 몰두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양한 선택지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을뿐더러 현상 이면에 있는 참된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선택의 폭이 넓으면 다양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오히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유목민처럼 하루하루를 불투명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사회를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고 말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탐색만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공동체를 제외하고) 어느 한 곳에 묶어 두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서 과학의 발달은 우리의 시선을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구조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 하나면 지루하지 않게 재미를 쫓아 쉼 없는 항해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뿐 아니라 정부의 기관이나 단체, 교육기관들도 개인의 영역에 깊이 관여하기를 꺼려하면서 '중립'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행정과 스탠스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가능한 선택지를 열어두고 '마치 액체처럼 어떠한 형태의 미래에도 맞춰서 적응할 수 있는 유동적 상태에 머무른다.'
과연 이런 무한 탐색의 길이 최선의 선택일까? 이 책의 저자는 무한 탐색 모드도 장점이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너무 부담이 되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융통성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탐험이 없다면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발견할 기회도 얻지 못한다. 그러면에서 무한 탐색은 가짜 자아를 버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탐색이 지나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한다. 아무리 새로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싫증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 또다시 새로움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에는 그 새로움을 쫓아 나선 한 여자의 일상을 다루는데 그 결말이 참 흥미롭다. 영화는 그 새로움이 한 때 연인과 함께 추는 춤과 같이 일시적이며 설렘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잘 그리고 있다. 깊이는 보통 새로움을 이긴다. 한 가지에 몰입을 하면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힘이 들기도 하지만 익숙해지면 내 삶의 일부가 되고 깊이가 더해진다. 마치 어머니의 집밥과 같이 매일 먹으면 그 소중함을 잘 모르지만 더 이상 쉽게 먹을 수 없게 될 때는 그립고 그리운 것처럼 말이다.
백화점에 가면 코로나 시국에도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있다. 명품 매장.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명품매장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장인(artisans)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든 제품임을 강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견고해 보이기도 하고 섬세하기도 해서 그걸 걸치면 뭔가 내 가치도 올라갈 것만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장인들은 수십 년 동안 한 가지에 몰두해서 기술을 연마한 사람들이다. 그 몰입과 열정의 결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아 헤매지만 정작 우리가 진정 좋아하고 닮고 싶은 사람은 한 분야에서 일갈을 이룬 깊이 있고 진중한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는 점점 결혼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인간이 만든 많은 제도 중에서 결혼제도만큼 오래 유지되어온 것이 있을까 싶을 만큼 오랫동안 그 견고함을 유지해 왔지만 현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결혼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하도록 방치하고 있지만 결혼은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전념의 길로 안내해 준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면도 있다. 결혼을 통해서 나와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깊이 이해하고 그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성숙함은 그 어떤 것보다도 견고하고 값지다. 또한 아이가 태어나면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탄, 그리고 조건 없는 헌신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그렇게 가정이라는 관계 속에서 얻는 유대감과 헌신은 함께 사는 공동체를 향한 헌신과 연대감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처럼 전념할 때 깊이가 생기고, 그 깊이는 궁극적인 새로움을 얻게 해준다. 한 때 YOLO(you only live once)로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았던 라이프 스타일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내 맘이 가는 대로 무한 탐색을 하며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 말을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뮤지션 Mickey Hart는 한 목장에서 30년 넘게 깊이 파고들어 하트 목장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니 깊이 파고드는 것이 낫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깊이 파고드는 것은 힘이 든다. 왜냐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그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깊이의 시곗바늘은 내가 기대한 시간의 속도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그 깊이를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자신이다. 한 가지에 제대로 몰입하는 망치가 되어 궁극적인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이 될지 무한 탐색 모드만을 고집하며 사회에 의해 단조되는 모루가 될지 선택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선택해서 수렁에 빠진 나를 건져냈고, 그것이 또 다른 새로움으로 확장해 나가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전념은 오히려 새로운 길로 안내하는 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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